기도의 뜻과 안식일ㅣ기 도(1)

운영감자
2024-03-14 16:58:07

기도의 뜻과 안식일 / 제 1 강


- 막 9:14-29 -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를 잘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자신 있는 단어는 구원 얻는 믿음 다음으로는 아마 기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되면 이런 생각들은 다소 후퇴하지 않을까 싶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은 미친 어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예수께서 내려오셔서 고치신 뒤 ‘우리는 왜 고치지 못하였나이까?’ 제자들이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하지 않은 연고니라’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어떤 일이건 기도하면 무조건 응답된다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이것 이상의 훨씬 더 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왜 기도를 강조하셨을까를 다른 곳에서부터 추적해 보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지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겔 36:32-36)”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겔 36:37)”


에스겔서 36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리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지금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고 이스라엘 전역은 황폐화되었다. 그들은 수치를 당해 마땅하다. 그러나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축복을 선언하신다.


“내가 너희를 고쳐주고 다시 축복해 주겠다. 그러나 이것은 너희가 축복을 받을만 해서는 아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받을만한 조건을 갖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면서 그 조건으로 ‘구하면’이라는 말씀을 전제로 하신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기도의 원리는 “도와 주십시오”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기도란 이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내 신앙이 좋다는 의미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세상살이에서 자존심이 있는 한 거지노릇은 하지 못한다. 기도란 자존심이 없어진 다음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기도를 그들의 자존심을 채우는 것을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기도했더니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식으로 자존심을 높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를 그렇게 재고 있는 것이다.


“진심으로 기도를 했더니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당신은 왜 기도하지 않는가?”말하고 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떳떳하게 하나님께 얻어온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있는가? 기도란 그런 차원에서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서에서는 “그래도 너희가 구하여야 주겠다”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때문이다. 이 일을 이루시는 이가 하나님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가장 중요한 촛점이 명백하게 표시되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세상의 힘으로 살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신다. 그런데 그 힘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언제나 부닥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 도와 주십시오”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기도이다. 우리가 헤쳐 나가고 우리가 살아온 모든 지금까지의 인생과 시간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업어 오셨고, 간섭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신앙의 한 형태가 기도이다.


불신자들이 좋은 일을 만나면 묘자리를 잘 써서 그렇다고 말한다. 신자들은 기도없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묘자리를 잘 써서 일어난 일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것을 확실히 해주기 위해서 기도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기도하게 한 다음에 주심으로 ‘하나님이 해주시는구나’를 확실하게 하고 싶어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세상의 힘이나 내 힘을 의지해서 살 수 없는 길을 가는 사람인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 인생에 가장 많이 쌓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순간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것 뿐이다. 그것이 기도이다. 기도란 기도를 하는 만큼 잘난 것이지만 그것은 반대로 우습게도 못났다는 자기의 주제를 파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느 경우에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이쪽은 자기가 못난 줄을 몰라서 기도 안하는 것이다. 기도를 안하는 이유는 자기 힘으로 될 것 같아서 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안하는 쪽이 훨씬 더 못난 것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신앙수준을 스스로 확인하려면 기도를 어떤 원리에서 얼마나 하는 가를 살펴보면 확실해진다. 우리 기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세상이 아니고 세상 속에 있되 하나님의 자녀로써 영적인 싸움을 하는 길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영적인 싸움과 결부되느냐에 따라서 기도의 양이 늘어난다.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대부분 세상의 싸움에 붙잡혀 있으면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세상의 싸움은 세상의 것으로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영역이 영적인 싸움으로 확대되는 만큼은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그 차이 밖에 없다. 기도란 그런 것이다.


다시 마가복음 본문으로 돌아가서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직역하면 무슨 뜻이 되는가? 그런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뜻이다. 기도를 해야 일이 일어난다는데 기도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한다는 것은 ‘이 일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이라는 말이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으로 도움을 구하러 나가는 자세이다. 그것이 기도이다. 왜 우리는 이 일을 할 수 없는가? 이런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전도 파송을 받아 나갔을 때 귀신을 쫓아내고 병고치는 은사를 행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자가 되면 자동으로 능력이 이양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도 능력을 주시겠다고 한적이 없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보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은 우리의 상급이고, 방패며 능력이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으로 기도를 가지지 말라. 기도는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 이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 간섭하시고 도와 주십시오”라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 이것이 기도이다. 기도란 내가 휘두르는 무기가 아니라 가서 꿇어 엎드리는 것이다.


본문 가운데 우리 말 성경에 빠진 중요한 단어가 있는데 “금식”이다. 금식이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의 모든 힘을 음식으로부터 공급받는 법이다. 그래서 금식은 성경에서 늘 이 일이 어떻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가를 증명하는 일에 쓰이는 것이다. 금식은 곧 ‘이 일은 인간 자신의 능력이 아닌 어떤 제 3의 힘에 의해서 되어졌다고 보이는 표’가 되는 것이다. 기도와 금식은 본문에서 인간능력을 벗어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간섭의 역사를 드러내는 조명기구인 셈이다.


구원 얻은 우리는 기도하면서 다음 단계를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하나님 말씀 앞에 설 때에는 각오를 하고 와야 한다. 마음에 칼을 품고 와야 한다. 오늘은 얼마나 쪼개져 나갈까, 내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말씀 중에 어느 부분이 아직도 희미했던가, 어느 부분이 상식에 불과했던가, 그 일을 위해서 모일 작정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요구에 대해서 철저하게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이미 신앙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도와 주십시오”로 출발하는 자세이다.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살아 계심과, 내 안에 계심과, 언제나 내 필요한 것은 채우시는 이인줄을 감격 속에서 깨닫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인생인 것이다. 안하는 사람은 안하는 만큼 모르고 모르기 때문에 더 안하게 되는 것이 기도이다.


이런 고백으로 출발하자. “기도 외에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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